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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아르곤
    드라마로 만나는 세상 2019. 1. 25. 21:00

    여기 모아 놓은 글은 제가 직접 써서 인터넷 매체에 송고했던 글들입니다. 당연히 여기 있는 글들은 모두 제가 직접 쓴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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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속말> 마지막 회에서 악의 축이었던 강정일(권율 분)은 결국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강정일은 감옥에 갇혀서 무언가 나중을 다짐하듯 독한 눈으로 아버지 사진을 쳐다본다. 그 장면은 내게 강정일이 감옥에 갇힌 통쾌함을 금세 사라지게 하고 서늘함을 안겼다. 악은 성실하기에 욕망에 결합한 또 다른 악들이 계속해서 사회에서 자라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귓속말> 마지막 회를 본 후 마음 한 편이 한없이 무거워졌었다. 

    그때는 몰랐다. <귓속말> 마지막 회보다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마지막 회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을 것이라고는. 아니, 무거운 것을 넘어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 파는 마지막 회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을 것이라고는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26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 이야기다. 

    통쾌함 기다렸던 <아르곤>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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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
    ⓒ tvN


    <아르곤> 첫 회를 본 후로 한 회가 끝날 때마다 그다음 회를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부정부패와 관련된 사건들을 해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현실 세계의 부정부패 관련 기사를 보며 가슴에 가득 차 있던 답답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아르곤> 마지막 회가 기다려졌다. <아르곤> 1회에서 나왔던 무려 71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드타운 부실 공사와 관련된 인물들이 드디어 벌을 받을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계약직 기자 이연화(천우희 분)의 활약으로 미드타운 부실 공사와 관련된 증거는 충분히 확보된 상황, 이제는 그 증거를 바탕으로 미드타운 부실 공사와 관련된 모든 진실을 펑 하고 터뜨리는 통쾌한 장면만이 <아르곤> 마지막 회를 채울 차례였다. 

    그런데 <아르곤> 마지막 회는 그런 기대를 철저히 배반했다. 미드타운 부실 공사에 책임을 져야 할 인물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대신 김백진(김주혁 분)에게 칼을 들이댄다. 그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미드타운 부실 공사에 김백진 역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김백진은 자기감정에 휘둘려 조작된 제보의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보도했고, 결과적으로 미드타운 건설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김백진의 자기 반성, 언론의 판타지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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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곤>의 진정한 판타지는 김백진의 자기반성 아닐까?
    ⓒ CJ E&M


    "일흔 한 명이야. 사회 보호막이 되어야 할 사람 중에 누구 한 명 눈 똑바로 뜨고 있었으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는 목숨이야."
    "권력 남용한 놈들만 고발하면 되는 거잖아요. 왜 팀장님까지."
    "우리도 보호막이었어. 근데 내가 내 일을 똑바로 하지 않은 거다."


    김백진은 자신을 향한 그 칼날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한다. 그러나 미드타운 부실 공사와 관련되어 있는 HBC 사장은 <아르곤> 팀의 보도를 철저히 막는다. 자신들의 회사에서 보도가 힘들게 되자 김백진과 아르곤 팀원들은 급기야 다른 언론사에 제보하여 진실을 알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 미드타운 부실 공사와 관련된 고위 관료들이 모두 막는다. 

    자신의 실수를 고백해야만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 김백진은 양심선언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김백진의 선택은 훌륭한 언론인 상을 받게 되는 자리에서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기자로서 가장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순간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는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여론이 어떻게 한 사람 죄인 만드는지 아시잖아요. 팀장님 그놈들이랑 한통속으로 묶어서 비난받을 것 뻔하다고요."

    김백진의 회사 후배 엄민호(심지호 분)가 한 말을 생각해보면 김백진이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치명적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김백진이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그동안 힘들게 쌓아왔던 신뢰와 명성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백진은 엄민호에게 이렇게 말하며 양심선언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를 해치는 기사라고 덮어버리면 우리 역시 그 망가진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거야."

    망가진 시스템의 일부가 되지 않겠다는 그의 고백은 멋있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의 고백을 들은 나는, 더 이상 그를 악당을 물리치는 히어로로 여길 수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히어로들이 나오는 영화보다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대중들 앞에 털어놓는 언론인 김백진의 모습은 오히려 더 <아르곤>을 더 판타지처럼 느끼게 했다. <파수꾼>에서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판사였던 김은중(김태훈 분)의 아버지는 자신의 일생의 딱 한 번 실수를 감추기 위해 악과 손을 잡는다. 그런 것이 사람인데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해치는 인물이라니. 

    <아르곤>의 진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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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아르곤>의 한 장면
    ⓒ tvN


    주인공이 부정부패한 사회와 싸워 이겨 나가는 드라마를 볼 때면 그래도 마음이 좀 편했다. 어디에선가 누군가 그렇게 사회악과 싸우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으니까. 그렇지만 악과 싸우기 위해 남과 싸우는 것을 넘어 자신과의 싸움까지 해낸 김백진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마음은 한없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아르곤>은 완벽주의자인 김백진마저도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 있다며 정의로운 주인공에 대한 시청자들의 환상을 깬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시청자를 향해 말한다.   

    아무리 신뢰하는 언론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언론인의 눈이 아닌 시민들 자신들의 눈으로 스스로 올바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언론이지만 그 진실을 전달받을 사람들이 눈을 바짝 뜨고 진실인지 확인할 수 있어야만 진짜 올바르게 진실이 추구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럴 때 이 사회의 망가진 시스템이 복구될 수 있다고. 

    그래서 눈을 감은 채 진실을 보지 말고 눈을 뜨고 보라며 주인공에 대한 시청자들의 환상을 깨며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마지막 회를 준비한 것은 아닐까. 아니 선물한 것은 아닐까. 그 선물 보따리를 풀지 말지는 이제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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