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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8사 기동대드라마로 만나는 세상 2019. 1. 25. 21:09
<이 곳에 모아 놓은 글은 모두 제가 직접 쓴 글입니다. 인터넷 매체에 송고해 정식 기사로 채택된 것들만 모아 놓았습니다>
그를 보는 순간 홍길동이 떠올랐고, 그들을 보는 순간 활빈당이 떠올랐다. 몇백 년 전 조선 광해군 시절처럼 적서 차별도, 계급이 있는 봉건 사회도 아닌 2016년에 어째서 홍길동과 활빈당이 떠올랐던 것일까. 보면 볼수록 그와 홍길동이, 그들과 활빈당이 닮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름은 '양정도'이고 그들의 이름은 '38사기동대'이다.
현대판 활빈당, 38사기동대▲ 백성일과 양정도가 함께 만들어내는 '케미'가 상당하다. ⓒ tvN
최근 역대 OCN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38사기동대> 이야기다. 케이블 드라마임에도 많은 사람이 본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고 빠져들게 하려면 그 밑바탕에는 '공감'이라는 녀석이 탄탄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재미'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감'을 바탕으로 하여 이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백성일(마동석 분)을 제외하고는 실제 사회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들이고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생겼어도 '38사기동대'를 이끄는 주인공 양정도(서인국 분)은 사기꾼이다. 작든 크든 한 번이라도 사기를 당해 본 사람이라면 아니 당해 보지 않았더라도 사기를 당해 자신이 힘들게 모은 재산을 빼앗겼다고만 생각해도 사기꾼들에게 절대로 호감이 생길 수가 없다. 그리고 양정도 옆에 있는 조미주(이선빈)는 '꽃뱀'이고, 또 다른 조직원인 장학주(허재호)는 자해공갈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인물이다. 그 외 다른 인물들도 합법적인 일을 하는 이들은 아니다.
쉽게 말해 사회에서 실제로 만난다는 상상을 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인물들의 집합이다. 생각해봐라.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자해 공갈하는 사람 때문에 억울하게 많은 돈을 쓰고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마음에 술을 먹다가 자신도 모르게 꽃뱀에게 걸려서 엄청난 카드 값이 나오고 그렇게 손해 본 돈을 다시 채우고자 투자한 곳이 사실은 사기꾼에게 걸린 것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38사기동대>를 보면 그들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니, 시청자들 대부분 역시 나처럼 그들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OCN 드라마 역사상 최고 시청률이 나왔을 리 없다. 꼴도 보기 싫은 이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니까. 그런데도 현실에서라면 절대 상종하고 싶지 않은 그런 인물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사기'를 치는 대상이 그들보다 더 엄청난 악당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정작 마주치기 힘든 엄청난 악당들.
그들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 <38사기동대>는 분명 통쾌하고 재미있는 드라마이지만, 여기에 그치면 안 된다. ⓒ tvN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악당들이 모인 '38사기동대'가 '사기'라는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데도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이겼을 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쾌감'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쾌감! '38사기동대'가 사기를 치는 집단들은 최근 누군가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을 '개돼지'처럼 여기고 몇십 억, 몇백 억이나 되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당당한 그런 인물들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런 그들이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법을 집행해야 할 고위 관료들이지만)
그리고 그 부당함을 견디다 못해 누군가의 말처럼 '개돼지' 계층이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 하면 오히려 직위에서 파면당하고 병원에 실려 가야 하는 일까지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잘 먹고 잘산다. 그런 엄청난 악당들에게 '38사기동대'가 치밀한 계획을 짜서 '사기'를 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내지 않으려 했던 '세금'을 다 내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 쾌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가슴 저 먼 곳에 묻혀 있다고 생각했던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가슴 속에서 다시 끌어올려 주니 이 얼마나 좋단 말인가.
그런데 이 강렬한 쾌감까지는 좋은데 그 쾌감 뒤에는 항상 허탈감이 같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 허탈감이 조선 광해군 시절의 홍길동을 다시 불러낸다. 봉건 사회를 살았던 민중들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도술을 쓰는 홍길동이라는 존재가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해결해주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를 살면서도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대리만족밖에 느낄 수 없다면 우리는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개돼지'가 되는 게 아닐까.
'개돼지'가 아닌 한 명의 성숙한 시민으로 <38사기동대>를 보았다. 옳지 못한 일을 보았을 때 날카로운 눈으로 매서운 손놀림으로 옳지 못한 일에 대해 시민 한 명이 한 명이 세상에 알리고 그 알림이 모여 울림이 된다면 <38사기동대>가 2016년 판 <홍길동전>으로만 남는 일은 없지 않을까?' 드라마로 만나는 세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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